처인의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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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인구 유래 처인구(處仁區)의 명칭은 고려 시대 처인부곡 및 처인현(處仁縣)에서 유래하였다. ‘처인(處仁)’은 ‘어진 이들이 거처하는 곳’이라는 뜻을 지니며, 예로부터 후덕한 민심과 평화로운 풍속을 상징해 왔다. 특히 고려 시대 대몽항쟁의 최대 승전지인 '처인성'이 위치한 역사적 요충지로서, 외세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켜낸 호국 정신이 깃든 지명이다. 이후 조선 시대와 근대를 거치며 행정구역이 개편되었으며, 1996년 용인군이 시로 승격된 후, 2005년 10월 31일 용인시의 역사적 중심지와 동부 행정구역을 통합하여 처인구가 설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고려 현종 9년(1018) 전국을 8목(牧)·56지주군사(知州郡事)·28진(珍)·20현령(縣令)으로 개편할 당시, 용인 지역은 광주목(廣州牧) 임내(任內)에 속하였다. 이후 154년이 지난 1172년에 광주(廣州)에서 분리되어 감무(監務)가 설치되었고, 뒤이어 현(縣)으로 승격되며 현감(縣監)이 파견되었다.

    처인현(處仁縣)은 본래 수원부(水源府)에 속한 부곡(部曲)에서 출발하였으며, ‘처인’이라는 명칭은 이미 고려 현종(顯宗) 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확인된다. 처인(處仁)은 용인(龍仁)의 옛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처인성, 처인문화제, 처인음악제 등 오늘날까지도 용인 동부 지역을 포괄하는 명칭으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한편 현재의 용인(龍仁)이라는 지명은 조선 태종 13년(1413)에 용구현(龍駒縣)의 ‘용(龍)’ 자와 처인현(處仁縣)의 ‘인(仁)’ 자를 합쳐 유래하였다. 이러한 역사성과 더불어 고려 시대 몽골의 침입을 막아낸 처인성 전투의 호국정신을 계승하고, 지역 정체성과 시민의 자긍심을 고취하고자 용인 동부 지역의 구청 명칭을 처인구(處仁區)로 명명하게 되었다.

처인구 연혁

  • 1413

    태종 13년 용구현(龍駒縣), 처인현(處仁縣)을 합쳐 용인현(龍仁縣)이라 명명

  • 1895. 5. 26

    23부제 실시에 따라 충주부 용인(龍仁)이 되었다가 이듬해 경기도 편입

  • 1914. 4. 1

    양지군(陽智郡)을 통합하고, 죽산군(竹山郡) 일부 편입. 내사(內四), 외사(外四), 원삼면(遠三面)으로 증설됨.

  • 1937

    수여면(水餘面)을 용인면(龍仁面)으로 개칭함.

  • 1963

    고삼면(古三面)이 안성군(安城郡)으로 편입되었다

  • 1979. 5. 1

    용인면(龍仁面)이 용인읍(龍仁邑)으로 승격됨.

  • 1983. 2. 15

    남사면 진목리(南四面 眞木里)의 월경(越境)마을이 평택군(平澤郡)로 편입(編入)되어 현재에 이른다.

  • 1996. 3. 1

    용인군(龍仁郡)이 도농복합형태의 시로 설치

  • 2005. 10. 31

    용인시 구제(區制) 실시에 따라 처인구 설치 및 구청 개청

  • 2017. 12. 11

    모현면, 이동면이 각각 모현읍, 이동읍으로 승격

  • 2021. 2. 19

    남사면이 남사읍으로 승격

  • 2021. 9. 6

    역삼동이 역북동, 삼가동으로 분동

  • 2025. 7. 14

    유림동이 유림1동, 유림2동으로 분동

  • 2026. 1. 2

    양지면이 양지읍으로 승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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